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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었구나..” 한때 티비에서 자주 보였던 ‘국민 아빠’ 배우 장용이 방송에 못나오게된 안타까운 사연

배우 장용은 1945년 4월 8일생으로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해방이 되기 전인 일제시대였을때 태어났습니다. 그는 일제시대부터 해방과 그리고 5살 때 6.25 전쟁까지 모두 겪어본 것인데요.

태어나자마자 얼마 안되어 전쟁을 겪고 자란 그는 우리나라가 가난했던 시절, 성장기를 거치며 서울 연극학교라는 전문학교를 다니게 됩니다.

당시 학교 연극과에서 연기를 배우고 연극 배우로 연기자 생활을 시작했던 그는 나중에 tv 탤런트로 전향을 하게 되는데 그가 군대를 제대하고나니 함께 연극판에서 연기하던 동료들은 전부 tv 드라마쪽으로 가버린 상태였습니다.

장용, 그 또한 군대에 다녀온 뒤에도 연극을 해오다 좋은 기회를 얻어 1971년에 지금은 사라진 tbc의 11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하며 대중에게 그의 얼굴을 처음으로 알리게 됩니다.

연극만 해오다 카메라 앞에 서는게 어색하진 않을까 싶었지만 그는 타고난 천상 연기자답게 드라마 연기도 익숙하게 잘 해냈습니다.

그에게 드라마와 연극 중 본인에게 더 잘 맞는 게 뭐냐고 물어보니 “드라마 연기는 대본이 나오자마자 얼른 대사를 외운 다음 잠깐 리허설하고 맞춰본 뒤 바로 촬영해야 하니까 순발력이 요구되고 반면 연극 무대는 긴 시간 호흡을 이어가야 하는 연속성이 있으니까 대사를 틀리건 잘못 표현됐건 에너지를 내서 해내야만 하는데 형식이 다를 뿐이지 둘 다 어려운 건 없다.”며 자신감을 드러냈습니다.

이렇게 포부를 밝혔던 그는 청년 시절부터 다양한 작품에서 활동을 했는데요. 데뷔 초기에는 날카로운 인상의 차가운 도시 남자역은 물론 80년대 형사 드라마의 주연 역할도 맡아왔습니다.

장기간 출연한 kbs tv <손자병법>에서는 주인공이었던 서인석과 경쟁하는 짜잘한 캐릭터를 연기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본격적으로 빛을 바라기 시작한 것은 8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많은 드라마에서 아버지 역할로 자주 출연하면서 최고 전성기를 맞게 된 순간들이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웃집 아버지’ 역할로 딱 어울리는 이미지를 가졌던 배우 장용, 대표적으로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는 <목욕탕집 남자들>과 <넝쿨째 굴러온 당신>에서 맡았던 역할들이 장룡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가장의 역할들이었습니다.

이후 2000년대 이후로는 재벌 회장 같은 지위가 높은 역과 의사 같은 전문직 역도 가끔 맡게 되기도 하는데 하지만 역시 그에게는 아버지 역할만큼 잘 어울리는 역할이 없었습니다.

서민 가장의 대표적인 연기자로 확고하게 자리를 잡아 전성기를 맞이한 장룡, 그런데 이렇게 잘나가던 장룡의 인생도 어느 날 가슴 아픈 시련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는 너무 많은 드라마에 동시다발적으로 출연을 하게 되면서 심한 경우 동시에 3개의 드라마에 겹치기 출연까지 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시청자들로부터 큰 비판을 받게 되며 급기야 논란의 중심에까지 서게 됩니다.

과거 2005년 장룡은 mbc <굳세어라 금순아>와 kbs <장밋빛 인생> 그리고 역시 kbs의 <슬픔이여 안녕> 이 3개의 드라마에 동시에 출연했는데 공교롭게도 그가 출연했던 드라마들이 모두 시청률 20%를 넘기며 인기리에 방영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드라마를 자주 보는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수요일이나 목요일 저녁 <굳세여라 금순아>에서 금순과 재희의 결혼 문제로 갈등을 빚는 ‘장용 박사’를 보다가 또 <장밋빛 인생>을 보면 술에 절어 사는 무능력한 ‘맹씨’ 역할로 나오는 장용을 보게 되는 시기였습니다.

그러다 주말 저녁에 kbs <슬픔이여 안녕>을 보면 장용은 윤여정과 다정한 부부 역할로 나왔는데 윤여정은 mbc <굳세어라 금순아>에서는 장룡보다 훨씬 나이 많은 금순이의 할머니 역할로 나왔기 때문에 시청자들에게는 드라마 시청의 몰입을 방해하고 역할에서 큰 혼동을 야기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탤런트 층이 넓지 않은 우리 드라마 현실에서 중견 탤런트들이 비슷비슷한 역할로 반복 출연하는 것이 어제 오늘 일은 아니지만 한 탤런트가 동시 방영중인 3개의 드라마에 겹치기 출연을 하고 상대 배우들까지 중첩되는 것에 대해 시청자들은 ‘심하다’는 반응까지 보이게 되는데요.

하지만 드라마 제작 현장의 피디들 입장에서는 가장 중요했던 것이 시청률인데 그중 kbs의 한 pd는 작품을 맡고 곧바로 장용에게 연락했고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며 ‘선배급 연기자들의 열연 때문에 40%를 넘는 시청률을 기록할 수 있었다’고 말했으니 그에 대한 드라마 제작진들의 신뢰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장용은 자신은 늘 비슷한 역할만 맡게 되는 부분에 대해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그간 다양한 역할을 맡진 못했는데 드라마 제작 pd들도 내게서 뽑아내고 싶은 모습이 대체로 친숙한 모습이었지만 사실 어떤 역할을 시켜줘도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주로 친근한 배역만을 할 수밖에 없었고 그러다 보니 상대를 배려하는 연기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되었다”고 털어놓으며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드라마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던 배우 장용, 하지만 그는 어느순간부터 매체를 통해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는 지난 2018년을 마지막으로 지상파 드라마에 다시 출연을 못하고 있는 상태였는데 드라마에서 불러주지 않자 자연히 수십년 전에 활동하던 연극 무대로 돌아가 연극 배우로 무대에 서기도 했습니다.

그가 드라마에서 사라진 이유는 다름 아닌 그가 가지고 있던 가장 큰 장점인 굿센 ‘서민 가장’의 느낌이 안타깝게도 많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이제는 많이 들어 벌써 80을 바라보게 되었다보니 이제는 서민 가장의 모습이 아닌 할아버지같은 분위기를 풍기게 되었고 서서히 드라마 캐스팅에서 후배들에게 밀리게 된것입니다.

나이를 먹는 것도 슬픈데 왕년에 그렇게 겹치기로 많이 불러주던 드라마 판에서도 외면을 받은 그는 50여년간 연기 한우물만을 파왔던 배우였기에 너무나 가슴 아픈 사실이었습니다.

우리들과 한 시대를 함께 해온 배우들이 하나둘씩 세상을 떠나고 있는 가운데 tv에서 더이상 볼 수 없게 된 장용이 비록 배우로서는 예전만큼 활동하진 못하더라도 가끔씩은 대중들에게 안부를 전하며 건강하게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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