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먹하네요..” 무면허 대포차 음주운전에 치인 손주와 쓰러진 딸, 가족과 생이별을 해야만했던 배우 김영옥의 충격적인 소식

1938년, 해방도 되지 않았던 일제시대 때 태어난 원로배우 김영옥, 백발의 할머니 역할이 잘 어울리는 그녀는 안타깝게도 무려 30대 젊은 시절부터 할머니 분장의 노인 역할을 주로 맡아 연기했습니다.

김영옥 본인 말로는 정확히 31살부터 했다고 하는데 1976년 드라마 <여고동창생>이라는 작품을 촬영할 당시 그녀의 나이는 40세였는데 극중에서 그녀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딸을 둔 엄마 역할을 맡았었습니다.

또한 환갑도 되기 전인 1996년 드라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에서는 치매 노인 역으로 출연해서 동년배 뻘인 배우 주현과 나문희가 그 드라마에서 아들과 며느리 역할을 하기도 했는데요.

그녀는 동년배랑 부부도 아니고 아들과 며느리 사이로 연기해서 참 분했다고 하는데 이 드라마 이후 1997년에는 드라마 <내가 사는 이유>에서 나문희와 친자매 역할로 나왔습니다.

하지만 하필 극중 나문희가 정신장애가 있는 역할이라 친언니인 김영옥을 드라마 후반부까지 ‘엄마’라고 부르는 연기만 했고 심지어 김영옥은 자신보다 한살위인 선배 신구의 엄마 역할도 했었는데요.

김영옥은 당시 신구가 주인공인 작품에 섭외되었다고 하길래 자신이 신구의 부인 역할인줄 알고 대본을 받았는데 자신이 엄마 역할이라는 걸 알게 되어 당혹스러웠다고 합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원로 연기자들이 하나 둘씩 타계하면서 노인 배역을 맡을 배우들이 점점 줄어들게 되고 비중을 가리지 않고 노인 역할로 여러 드라마에서 다작을 하게 되면서 그 입지가 더욱 커지게 됐는데요.

남자 노역은 주로 이순재가 얼굴을 비춘다면 여자 노역은 대부분 김영옥 아니면 나문희가 꿰차고 있을 정도로 브라운관에서 얼굴을 자주 볼 수 있는 친근한 노역 배우 중 한 명이 되었습니다.

생각해보면 김영옥은 그동안 가난한 할머니, 인자한 할머니, 욕쟁이 할머니, 부잣집 할머니 등 방송사 및 장르를 가리지 않고 정말 오만가지 드라마의 다양한 할머니 역할을 소화해 젊은 나이부터 할머니 연기의 1인자로 자리를 잡았는데요.

게다가 예능 프로그램에도 왕성하게 출연한 데다가 연극 <불효자는 웁니다>의 전국 투어도 성황리에 맞췄고 성우 출신답게 각종 프로그램의 나레이션, 어린이들을 위한 전래동화 전집에서 할머니 목소리로 동화 구연까지 했을 정도로 80대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왕성한 활동을 보여줬습니다.

이제는 활동을 쉴 만도 하지만 그녀에겐 활동을 쉴 수 없는 가슴 아픈 사연이 있는데 슬하에 1남1녀를 두고 있는 김영옥은 30대인 큰 손자가 얼마 전 너무나 안타까운 참변을 당해 그 충격으로 너무나 큰 쇼크를 받게 되었습니다.

바로 손자가 택시를 타려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무면허 음주운전 차량이 인도까지 올라와서 손자를 덮치게 된 일입니다. 그 사고로 손자는 그 자리에서 의식을 잃고 혼수 상태까지 가게 되었는데요.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 교통사고에 충격을 받은 김영옥의 딸 마저 아들의 참변에 큰 충격을 받아 사고 1년 만에 쓰러지고 급격한 건강 악화를 겪게 됩니다.

그녀의 딸은 찢어지는 가슴으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깨어나지 못하는 아들의 손을 주무르고 수건으로 닦고 마사지를 해주며 지키다가 결국 본인이 쓰러기데 되는데요.

그런 딸의 모습을 안타깝게 지켜보던 김영옥은 자기가 미칠것 같고 딸이 손자를 돌보느라 더 아플까 봐, 자기가 손자를 데리고 있다고 털어놨는데요.

그녀의 손자는 이후 몸을 회복하면서 의식은 돌아왔지만 휠체어를 타고 다녀야 하는 정도로 힘겹게 견디면서 살아가고 있고 김영옥의 딸은 여전히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녀는 딸을 생각하며 “걔가 아프면 마음이 아프다. 그저 ‘우리 딸 건강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다.”며 “딸한테도 네가 건강해야 손자도 일어난다. ‘내가 애 데리고 있는 동안 걱정 말고 섭생 잘하고 견뎌라’고 전하며 손자를 봐주기 위해서라도 나 자신이 건강해야 한다는 마음을 먹고 생활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이어 “내가 버텨야 손주를 챙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건강을 더욱 챙기게 되었고 내가 손주를 돌보는 것도 있지만 손주가 나를 돌보는 것 같다.”는 말로 많은 이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했는데요.

게다가 김영옥은 당시 이미 사랑하는 자신의 가족들과 영원히 만날 수 없는 이별을 해야 했던 상태였습니다. 그녀에게는 두명의 오빠가 있었는데 6.25 당시 인민군으로 끌려간다는 소문에 어머니가 오빠들을 다락방에 숨겨놨었습니다.

그러다 당시 연세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큰오빠가 끝내 북한으로 끌려가게 되었고 결국 나중에 큰 오빠는 북한군으로 작은 오빠는 국군으로 뛰어 서로 형제가 다른 나라를 위해 싸웠다고 합니다.

그렇게 오빠와 생이별을 하면서 수십년간 만나지 못하고 결국 그녀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10년이 되던 해인 2000년, 그녀는 이산가족 상봉을 통해 50년이 지나서야 큰오빠와 재회하게 되었습니다.

재회 당시 김영옥은 오빠를 보며 ‘어린 시절의 얼굴이 다 사라져 버렸다’고 했는데요. 재회의 시간은 너무 짧았고 그로부터 또 20여년이 지난 현재, 그녀의 오빠는 아직도 잘 살아서 지내고 있는지 생사조차 알 수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또한 그녀는 친했던 배우 여운계가 세상을 떠났을 때 슬퍼하며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나기를 기원했었는데요. 젊은 시절부터 여러 아픔을 겪어야 했던 안타까운 그녀의 인생에 많은 응원을 부탁드리며 좋은일만 가득하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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